한국 고문서 입문 간행 | |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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□ 1707년(숙종 33) 전남 구례현에서 부동산 소유권 소송이 벌어졌다. 정응창(鄭應昌)이라는 사람이 남긴 전답 때문이었다. 정응창이 자식 없이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전답의 소유권 문제가 복잡해졌고, 이것이 결국 소송으로까지 번진 것이었다. ㅇ 원고는 순천에 사는 강인신(姜仁信)이었다. 강인신은 이 전답이 자신의 장인 배맹남(裵孟男)이 정응창으로부터 구입한 것인데 정응창의 조카인 정지훈(鄭之訓)이 배맹남을 속여 이를 갈취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. ㅇ 피고는 구례에 사는 정수영(鄭水永)이었다. 정수영은 정지훈의 아들이었다. 정수영은 정응창이 세상을 떠난 후 정지훈이 이 전답을 구입했다고 주장했다. ㅇ 간단해 보이는 소송이었지만, 원 소유주였던 정응창이 죽은지 벌써 50년이 넘게 지난 시점이었기 때문에 시비를 가리기가 쉽지 않았다. 원고와 피고 양측 모두 각각 증거문서를 제출하며 법적 다툼을 치열하게 벌였다. 소송의 모든 과정은 ‘결송입안(決訟立案)’이라는 문서에 기록되었다.
□ 이 ‘결송입안’에는 조선시대 노비의 토지소유권과 매매관행 등에 관한 흥미로운 내용들이 담겨 있지만 지금 이것을 읽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. 고문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문 능력 뿐 아니라 조선시대 고문서의 형식에 대한 지식도 필요하기 때문이다. ㅇ 지금까지의 고문서 연구에서는 흔히 최승희의 한국고문서연구가 교본으로 사용되었다. 이 책은 1981년에 간행된 이후 많은 고문서 연구자의 입문서 역할을 했다. ㅇ 하지만 지난 40여 년간 축적된 고문서 연구 성과를 반영한 새로운 입문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었다. □ 그나저나 강인신과 정수영의 소송은 누구의 승리로 끝났을까. ㅇ 원고 강인신은 장인이 생전에 전답을 샀다고 했지만 그 후 수십 년간 아무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다가 갑자기 소송을 제기하는 등 진술에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다. 무엇보다 강인신이 제출한 문서에서 고쳐 쓴 흔적이 발견된 것이 결정적이었다. 반면 피고 정수영은 진술에 일관성이 있었고 문서증거도 더 풍부했다. 1707년 구례현 전답 소송은 결국 피고 정수영의 승소로 끝났다. ㅇ 이 소송의 모든 과정은 한국 고문서 입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.
□ 국사편찬위원회(위원장 김인걸, 이하 국편)는 한국 고문서 연구 입문서인 한국 고문서 입문(전 2권)과 한국 고문서 연습(전자책 1권)을 간행했다고 밝혔다. ㅇ 한국 고문서 입문은 그간 축적된 고문서 연구 성과를 축약하여 고문서 연구에 입문하는 연구자에게 길라잡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. ㅇ 이 책은 한국 고문서의 특성과 양식을 비롯해 고문서를 유형별로 분류하고 주요 서식을 정리하는 등 누구나 쉽게 고문서 연구에 입문할 수 있도록 하였다. 그리고 전자책으로 간행한 한국 고문서 연습은 독자가 고문서를 직접 해독해 볼 수 있는 ‘연습문제’로 구성하였다. ㅇ 국편은 한국 고문서 입문을 각 대학이나 연구기관, 지방자치단체 등의 요청에 따라 배포한다는 방침이다. 한국 고문서 입문의 배포를 원하는 단체는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실로 문의하면 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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